세상사는 이야기
2014.08.05 05:30

벌써 정은임님 가신시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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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정은임님 가신시 10년...
아직도 그녀의 잔잔한 목소리가 들리는듯...
아직도 가끔은 10년이나 더 지난 그녀의 목소리를 듣기위해 팟케스트 켠다
세월은 흘러가도 세상의 차가운 본질은 여전하다.

40여전전 전태일 열사처럼
10여년전 김주익 열사처럼
낭떠러지에 발끝을 딛고 외치는 이들의 아픔이 계속되는 차가운 현실...


새삼 그녀의 목소리가 그리운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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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utube.com/watch?v=KjMd_SOAGvs

2003년 10월 22일. <고공 크레인>

새벽 세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 겠다구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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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영화평론가 정성일씨가  2004년 8월 아나운서 고 정은임씨를 추모하며


2004. 8. 24. 467호에 기고한 글로써, 원래 제목은 " 당신없이 누구랑 영화 이야길 하지?"입니다.


정말 감동적인 글은 기교를 부리는 글이 아니라 진실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글임을 글 곳곳에서

느끼게 되며 평소 정은임의 영화음악을 많이 듣지는 못 했지만 고인이 되신 고 정은임 아나운서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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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임.

세상에 없는 그를 기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정은임의 영화음악실>(이하 <정영음>)을 진행할 때 가장 행복했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은 영화음악실 안의 그를 가장 사랑했다는 것. 지난주의 부고기사에 이어, 그에 관한 조금 긴 회상들을 싣는다. <정영음>의 간판 게스트였던 정성일씨는 우리는 미처 알지 못했던, 마이크 뒤편의 정은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함께했던 다섯명의 팬들은 영화음악실이 그들 개인, 더 나아가 이 사회에 무슨 의미였는지 돌아봤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빌며, 행복한 기억들을 선사해준 그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말을 전한다. 편집자


<정영음>의 간판 게스트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마지막 편지 


  첫 문장은 백번을 고쳐서 다시 써도 도무지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쓸 생각이다. 그것만이 내가 당신을 불러오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혹은 떠나가는 당신을 잠시라도 불러세우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멋지게 쓰려는 것은 역겨운 일이다. 슬프다기보다는 그냥 아프다. 죽음이 우리의 삶의 일상사의 일부이고, 나는 적지 않은 지인들을 이미 떠나보냈다. 그중에는 당신보다 더 나이 어린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당신과의 작별은 나를 아프게 만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른여섯살은 세상을 떠나야 할 나이가 아니다. 그것도 가장 바보 같은 죽음을! 그렇게 바보 같은 당신을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서 2004년 8월 5일 오후 5시 반에 일원동 삼성병원 영안실 15호실을 찾았다. 당신이 세상을 떠난 지 스물세시간만의 일이다. 거기 그렇게 당신은 그냥 사진으로만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숨막힐 듯한 더위로 가득 찬 채 화창한 햇빛이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혹은 집에 돌아오는 길은 달이 휘영청 뜬 채 그렇게 무심코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당신을 마지막으로 보러 가는 그 순간에만, 영안실까지 가는 그 길목에서만, 비를 뿌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인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건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당신과 나누었던 영화 이야기들을 떠올려볼 생각이다.



이 여자, 재미있다
게스트와의 전투로 다져진 학습능력

  그해 가을, 그러니까 당신이 스물네살이 되는 1992년에 그렇게 처음 이제 막 진행을 시작한 '영화음악실' 에 나는 게스트로 초대되었다. 일주일에 한번 나오는 것이었고, 그때 프로그램 피디였던 홍동식씨는 그냥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아무 이야기나 하셔도 되고요. 단 하나 연예계 소식만 전해주지 않으시면 됩니다." 사실 나는 그 말이 매우 고마웠다. 왜냐하면 그때만 해도 라디오에서 영화는 연예와 이음동의어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처음 방송을 녹음하기 위해 작은 라디오 스튜디오에 갔을 때 거기에는 홍동식 피디 곁에 작고 예쁘장한, 사실 소녀라는 느낌이 더 큰, 아나운서가 앉아 있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이 내가 초대받은 첫 번째 라디오 프로그램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아나운서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예쁘고, 귀여운 그녀들은 대부분 교양이 없었으며, 영화에 대해서는 배우들 이외에 별 관심이 없었으며, 텔레비전에 가기 위한 간이역 정도로 라디오를 생각하고 있었으며, 더더구나 게스트가 하는 말은 그냥 잡담 정도로 생각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은임씨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제스처가 좀 과장이 큰 편이다. 작은 편인 걸 자기가 알기 때문에 좀 커 보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약간 가성이 들어간 상태에서, 내게 인사를 했다. 나도 인사를 하면서 그냥 혹시 이 소녀 공주병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방송국이란 곳에 대해서 편견이 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정은임씨는 처음에는 영화에 대해서 잘 몰랐다. 상대방이 영화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 가늠하는 것은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은임씨는 오프닝을 자신이 직접 썼지만,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구성작가들에게 의존했다(그리고 그때 <정영음>의 구성작가들은 그들 자신도 자부심을 느끼는 것처럼 '최강'(最强)이었다). 물론 그것이 잘못은 아니다. 나는 영화에 내 사랑을 건 사람이지만, 상대에게 그걸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잘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하고 나설 때는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나는 그때 고작 서른네살에 불과했다. 첫 방송 녹음이 시작되고, 그냥 무사히 끝났다. 약속한 시간은 십분이었고, 조금 넘겨서 끝난 걸로 기억한다. 사람들은 녹음된 내용만을 듣기 때문에 녹음하기 전에 나누는 대화나 혹은 중간에 음악을 틀면서 나누는 은밀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게스트와 진행자 사이에서 진짜 대화는 대부분 그 막간에 있다. 그때 정은임씨는 내게 자신이 영화음악실 담당자로서 무언가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약간 으스대는 목소리로 "리버 피닉스의 <아이다호>, 정말 좋지 않으세요?" 라고 내게 느닷없이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방점은 느닷없다는 데 있다. 그때 이 영화는 일종의 컬트영화였고, 소수자들만이 이 영화를 찬미할 때였다. 나는 그냥 약간 지겹다는 투로 친절하게 대답했다. "구스 반 산트는 그거보다 먼저 만든 <드럭스토어 카우보이>가 훨씬 좋아요." 대화는 썰렁하게 끝났고, 나는 개의치 않고 짐을 싸서 방송국을 나왔다. 매주 여의도에 한번씩 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를 당황하게 만든 것은 삼주 뒤였다. 방송에 들어가기 전에 느닷없이 "<드럭스토어 카우보이>도 좋기는 한데요. 전 여전히 <아이다호>가 더 좋은데요" 라고 내게 말했다. 갑자기 무어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게 된 나는 그날 녹음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고 끝을 냈다. 나는 돌아가기 길에 혼자 중얼거렸다. 이 여자, 재미있다. 정은임씨는 그런 사람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내 생각에) 그녀에게 가장 뛰어난 점은 학습능력에 있었다. 그녀는 자기 프로그램에 초대받은 게스트들이 무엇을 제일 잘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배웠다. 그것도 매우 전투적으로 배웠다. 말하자면 정은임씨는 영화를 책이 아니라 일종의 실전 비평을 통해서, 자기 프로그램에 초대받은 게스트들과의 진검승부를 통해 익혀나간 사람이다.



이 여자, 멋지다
남의 말을 꼼꼼히 듣고 핵심을 찌르는 직관력

  아주 오래전 사석에서 정은임씨는 게스트 중에서 박찬욱 감독을 제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때 박찬욱은 '진짜 안나가는' 감독이었으며, 차라리 그가 쓰는 영화에 관한 글로 영화 '선수' 들 사이에서 유명해지고 있었다. 나는 정은임씨가 박찬욱 감독에 대해 지나가듯이 한 멘트를 기억하고 있는데, "박찬욱 감독은 자기 영화를 볼 수 있는 관객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거예요. 그냥 영화에 대해서 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 영화 이야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지만,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영화 이야기도 아니잖아요" 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이 여자,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 말을 기억하는 나는 올해 초 1월에 그녀의 방송에 초대되었을 때 한국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물었다. "이제 그때가 온 거라고 생각하세요?" 지난해 겨울 <올드보이>는 이례적인 성공을 했고, 아직 칸에 가기 전이었다. 정은임씨는 "박찬욱 감독은 좀더 나아갈 것 같은데요"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단서를 달았다. "좀 위험하긴 하지만요." 정은임씨는 가끔 어떤 직관 같은 것을 보여주었다. 박찬욱 감독이 지난주 <씨네21>에 "…(중략) 하지만 정은임씨는 내가 하는 모든 이야기를 재밌어하고, 즐기면서, 꼼꼼히 귀기울여 들어주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런 경청에서만 나올 수 있는 질문으로 나를 당황하게 만들곤 했다…(중략)" 라고 쓴 대목을 읽었을 때 부고 기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만 웃고 말았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어떤 확신에 차서 웅변조가 되는 사람이다. 혹은 거의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정은임씨는 질문할 때 정면으로 그냥 콱 찌르는 사람이다. 시시하게 말을 빙빙 돌리거나 아니면 중언부언하지 않는다. 그때 누구라도 일단 멈칫하게 만드는 질문의 예리함은 정은임씨의 그 꼼꼼한 준비와 직관에서 오는 것이다. 그 대목을 읽으면서 그 순간 너도 참 아찔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을 하다가 정말 이런 순간에 걸려들면 쩔쩔 매게 만든다. 나는 그때 <한겨레>에 매주 영화평을 쓰고 있었는데, 그녀는 매주 꼬박꼬박 그걸 읽으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았다(그걸 알게 된 건 한참 뒤의 일이다). 그리고 내가 쓴 영화평을 이야기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들고 들어올 때 정은임씨는 종종 급소를 찌르는 듯한 질문을 던지곤 했다. 처음에는 질문 자체가 좀 우스꽝스러웠으나, 점점 그 질문은 핵심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보통 방송국은 게스트들을 6개월에 한번 프로 개편할 때마다 '자르는' 것이 관례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나는 6개월이라는 주어진 시간 동안 내 멋대로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막 나가고 있었다. 정은임씨(와 이 프로의 피디인 홍동식씨)는 그걸 재미있어 하고 있었다. 나는 점점 약속한 시간을 넘겨서 한 시간인 이 프로그램에서 거의 삼십분 이상을 떠들어대곤 했다. 정은임씨가 좀 곤혹스러워한 건 내가 방송대본을 준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몇장의 메모만을 준비한 다음 그걸보면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함께 진행해야 할 정은임씨는 자신이 아무런 준비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좀 화가 나 있었다. 그걸 서로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대신 나는 다음주에 무슨 내용을 할지에 대해서 언제나 정은임씨와 의논을 했다(홍동식 피디는 그 문제에 대해서 그냥 믿고 맡기는 타입이었다). 그러면 정은임씨는 자기 방식으로 준비를 했다. 두명의 데이비드(린치와 크로넨버그),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타르코프스키, <블레이드 러너>, 왕가위, 혹은 오우삼, 팀 버튼, (코폴라의)<드라큘라>, 세편의 <에이리언>(아직 카로-주네의 네 번째 <에이리언>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허우샤오시엔, 임권택. 명단이 늘어날수록 점점 프로그램은 이상하게 진행되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청취자를 잊어버리고, 정은임씨를 매주 설득시키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게스트가 되어가고 잇었다. 그건 정은임씨의 재능이다. 아마 다른 게스트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녀는 점점 매우 까다로운 미팅 상대가 되어갔다. 처음에는 쉽게 설득되었지만, 점점 많은 게스트들과의 만남에서 얻어낸 경험과 지식, 그리고 영화에 대한 그녀 자신의 이해가 깊어지고 넓어지면서 질문이 많아졌다. 나는 계절이 바뀌어도 '잘리지' 않았고, 그렇게 2년2개월을 매주 함께했다.



이 여자, 훌륭하다
프로그램에 자기 생각을 넣으려 했던 필사적인 노력

  정은임씨가 해낸 많은 것들은 사실 홍동식 피디의 그림자 아래서 이루어진 것이다. 종종 사람들은 정은임씨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할 수 있는 수위를 훨씬 넘는 발언과 인터내셔널가의 방송에 대해서 전율하지만, 그것은 프로그램 담당 피디가 직업인으로서의 자기 목숨을 '함께' 걸지 않는 한 힘든 일이다. 또는 영화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은 이미 구성작가들에 의해서 준비된 것들이다. 그러므로 단지 그러한 이유로 정은임씨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면 정말 이야기되어야 할 이름들은 홍동식 피디와 그 당시의 구성작가들일 것이다(나는 2003년에 다시 찾아온 <정영음>에 대해서는 말할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그녀의 방송에 2004년 1월에 네번 출연한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동식 피디의 자리를 대신 한 임재윤 피디는 '90년대의 전설' 을 21세기의 살아 있는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 열정적으로 임했다. 그건 정말 그랬다). 정은임씨의 진짜 훌륭한 점은 자신이 그들의 그림자 아래 그저 분신에 지나지 않는 '가케무샤'(影武者)가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아나운서들은 구성작가들의 대본에 온기가 감돌도록 안간힘을 쓰지만, 정은임씨는 그것을 고쳐가면서까지 자기 생각을 넣으려고 했다. 그저 예쁘게 다듬거나 아니면 멋진 말을 넣고 빼는 것이 아니라 영화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넣으려고 했다. 그건 매일 스튜디오에 들어가야 하는 방송의 무시무시한 메커니즘 속에서 거의 필사적인 노력이다. 그녀는 방송을 하면서 자주 아팠다. 겨울에는 감기 때문에 쩔쩔 맸고, 봄에는 두통을 아파했다. 여름에는 가벼운 몸살에 자주 걸렸고, 가을에는 그 후유증을 다스리느라고 힘들어했다. 심지어 두번은 그녀가 미리 녹음해놓은 인사말이 끝난 다음 마치 그녀가 내 앞에 있는 것처럼 혼자서 그 긴 시간을 녹음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정은임씨는 <정영음>을 심야에 그저 분위기를 잔뜩 띄우면서 목소리를 낮추고 음악이나 틀어대는 프로그램으로 잊혀지기를 원치 않았다. 그녀에게는 이 방송이 일종의 해방구이자 공동체이며, 더 나아가 영화를 통해서 좋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일보전진이 되길 원했다. 사실 그녀와 그 동료들이 함께 만들고자 한 <정영음>의 핵심은 여기에 있었다. 그걸 아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정은임씨는 나처럼 영화에 매달리지 않았다. 영화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애썼지만, 그러나 그 노력은 영화를 빌려 세상 안으로 더 깊이, 더 가까이, 더 낮게 다가가고 싶었던 마음의 일부였다. 그러므로 만일 정은임씨는 그녀 자신이 영화가 아니라 음악을, 혹은 문학을, 또는 그 어떤 다른 프로그램을 맡았다 할지라도 같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며 같은 자리에 올랐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은임씨가 다시 <정영음>에 돌아온 2004년 1월에 다시 같은 스튜디오에서 만났을 때 그녀에게 "영화는 결국 당신에게 운명 같은 게 아닐까요?" 라고 물었다. 그녀 자신도 영화로 돌아온 게 마치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편하다고 대답했다. 내가 그 겨울, 거의 8년 만에 다시 자리에 앉았을 때 <정영음>이 제 시간에 도착한 편지와 같다고 한 말의 일부는 정은임씨에게 보내는 내 마음의 연애편지와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내 마음의 편지를 들고 방송국에 가서 정은임씨에게 전달했다. 그녀는 그냥 살짝 웃었다. 언제나 소녀 같을 줄 알았던 그녀의 얼굴에도 가볍게 주름살이 눈가에 그려졌다. 정은임씨는 지아장커의 <임소요>를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친애하는 당신>이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하지만 이제 기회가 없다). 그녀는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에 가볍게 흥분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녀가 영화를 떠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이다.


이 여자, 안타깝다
능력과 용기에도 불구하고 기회 오지 않아

  내가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은 왜 그토록 <정영음>은 방송국에서 미움을 받았을까, 라는 의아함이다. 나는 방송국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하며, 더더구나 방송국 프로그램 편성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1995년도에도 그러했고, 2004년에도 똑같은 과정을 밟으면서 그녀의 방송은 그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중단되었다. 정은임씨가 라디오에서 맞이한 기쁨의 순간은 너무 짧았다. 그녀의 죽음 앞에서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그 끝까지 가볼 용기가 있었던 그녀가 아직 하고 싶은 것을 체 해보지도 못하고 중단되었다는 데서 오는 것이다. 죽음은 이르게 올 수도 있고, 더디게 올 수도 있다. 그건 사람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은임씨는 그녀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단 한 가지 안타까움, 방송국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냥 기다림으로 보내야만 했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비디오를 소개하거나, 혹은 내일의 날씨를 알리거나,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들은 (내가 보기에)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정은임씨는 자신을 컨트롤할 때가 아니라, 말 그대로 자기 감정을 고스란히 내보이면서, 세상이라는 실패의 모순에 분노를 느끼면서, 그래서는 안된다고, 그걸 말하기 위해 전력투구할 때 가장 멋있는 사람이다.

  당신이 세상을 떠난 올해 여름은 정말 덥다. 이만큼 더웠던 것은 십년 전이었다고 한다. 그해 여름 매주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헐떡거리면서 여의도까지 갔었다. 나는 그때 당신에게 영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기 위해서 일주일 내내 준비를 하고 그곳까지 갔다. 내가 떠들기 시작하면, 당신은 아나운서답지 않게 턱을 고이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지금 나는 이제 세상에 없는 당신을 위해 이 글을 쓴다. 이 편지가 당신에게 도착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이제 나는 누구에게 나의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까? 누가 그렇게 내 영화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줄까? 세상은 점점 시시해져가고 있고, 나는 점점 쓸쓸해지고 있다. 한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편지를 여기서 끝내야 할 것 같다. 그 대신 오늘은 당신이 아직도 세상에 남겨놓은 싸이월드에 찾아가볼 생각이다. 당신 남 몰래 당신에게 매주 연애하는 감정을 안고 여의도를 찾아가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던 당신의 영화 친구 정성일 씀.

2004년 8월, 날씨 유난히도 무덥고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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